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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는 '총체적인 해결'을 매우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변화의 수단으로서 철학을 신봉했고, 사회는 항상 안정기와 혼란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믿었다. 변화는 난의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안정이란 정체를 의미했다. 격동 속에서 진보는 이루어지고, 새롭고 유능한 인재와 사상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마오 연구가인 리쩌허우에 의하면, 마오는 전국시대의 역사를 읽은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평화로운 시절을 다룬 대목은 싫다. 혼란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평화의 시기는 사람들의 발전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을 참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마오가 내린 숙명적인 결정에 배경으로 작용했는지 여부는 결코 알 수 없다. 마오는 일기를 쓰지도 않았고 비서들이 그의 모든 생각을 다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마오가 장제스를 패배시키고 공산주의 기치 아래 중국을 통일시킨 자신의 역사적 공적을 자부하고 있었고, 문화혁명이라는 십자군은 그보다 더 위대한 사업이라고 믿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문화혁명은 자신이 성취한 혁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완성하기 위한 혁명이었다. 그는 오염과 불순함, 그리고 당 내부로부터의 배반에 의해 혁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혁명을 창조한 사람들이 그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캉성의 독소를 지닌 말이 효력을 발휘했다. 마오가 생각하기에 이 새로운 캠페인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1949년의 인민공화국 건국보다도 위대한, 그의 마지막 업적이 될 것이었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위대한 중국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황제 중의 황제로서 맨 첫머리에 올려놓게 만들 것이라고 마오는 확신했던 것이다. (ko) |